구찌오 구찌 구찌의 두번째 이야기 (브랜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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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오 구찌 구찌의 두번째 이야기 (브랜드이야기)

by 오늘맑음🌞 2019. 11. 5.

안녕하세요 

브랜드스토리에 마스터피스 입니다

지난 이야기 구찌오 구찌의 구찌이야기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https://inforshare.tistory.com/6

 

구찌오 구찌 구찌의 첫번째 이야기 (브랜드이야기)

안녕하세요 브랜드스토리를 이야기하는 마스터피스 입니다. 첫번째이야기인 구찌오 구찌의 구찌 구찌갱을 있게해준 구찌 많은사람들이 입고 즐기는 구찌 최근 많은 여자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무대의상이나 레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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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첫번째 이야기입니다.

구찌가문의 몰락으로 바닥까지 떨어졌던 명성

어떻게 지금처럼 다시 명품중에 명품으로 다시 자리잡을수있었을까요?

 

구찌에 등장한 무적콤비

 

루이비통에는 베르나르 아르도

버버리에는 로즈마리 브라보

구찌를 구한 구세주는 바로

구찌의 미국 지사장인

도메니코 드 솔레 였습니다.

좌 톰포드  우 도메니코 드 솔레

1994년 구찌의 새로운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된

톰 포드

톰 포드와 도메니코 드 솔레가

구찌를 다시 살리게 됩니다.

톰포드의 구찌

톰 포드는 젊은 층을 공략하고 구찌를 고급스러우면서도 섹시하고 도발적인 브랜드로 바꾸어버립니다.

또한 

도메니코 드 솔레가 ceo가되면서

구찌는 완전한 주식회사가 됩니다.

뛰어난 사업가와 천재적인 디자이너의 만남은

파산위기에 처해져있던 구찌를 다시금 최고의 브랜드로 화려하게 부활시킵니다.

매출이 약 5배

5억달러였던 구찌를  25억달러의 매출로 다시 올라갑니다.

1998년 올해의 유럽기업으로 선정한 자료입니다.

 

이어서 1999년 구찌는 백화점을 운영하는 PPR그룹과 제휴를 맺어 독립 브랜드가 아닌 럭셔리 대기업의 소속이 됩니다.

 

PPR그룹은 수 많은 패션 브랜드를 소유한 거대기업으로

오늘날 세계 명품업계인 LVHM과 왕좌의 자리를 다투는

양대산맥의 그룹이 됩니다.

 

후에 이 그룹은 케링 그룹으로 회사명을 바꾸게 됩니다.

PPR 그룹의 속한 명품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

알렉산더 맥퀸

입생로랑 

스텔라 매카트니

부쉐론 

세르지오 로시

발렌시아가

그리고 이런 라이벌 관계속에서

명품업계들간의 구찌 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 전쟁의 시작은 프라다에서부터 시작하게됩니다.

먼저 프라다에서 구찌의 지분을 매입했는데 

후에 이를 LVHM에게 넘긴것이였습니다.

루이비통 베르나르 아르노

명품 사냥꾼 루이비통의 베르나르 아르노가 

34%의 구찌 지분을 사들이게 되었습니다.

이때 PPR 그룹에 속해있던 도메니코 드 솔레와 톰 포드는 구찌를 지키기위해

루이비통 산하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온힘을다해 막았습니다.

그리고 2001년 그들의 노력으로 LVMH는 구찌를 포기하게되죠

하지만 이때부터 PPR그룹과 이둘의 불화가 시작이됩니다.

 

구찌를 지켜낸 공로를 인정하여 계약 협상에 나서기 시작합니다.

수개월에 거쳐 서로의 득에 대해 양보없는 싸움이 지속되었고

결국 이둘의 요구를 참지못한 PPR은 이둘을 퇴출시켜버립니다.

톰포드의 구찌

2004년 톰포드는 자신의 마지막 컬렉션을 선보이게 됩니다.

수많은 패션 피플들을 구찌와 한몸 같았던 그의 마지막 컬렉션에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망해가던 구찌를 정상궤도로 올려놓았던 13년간 몸담았던

톰포드는 자식처럼 아끼던 브랜드를 떠나는게 편치 않았습니다.

톰포드의 계약해지로 인해 구찌의 주식은 곧바로 하한가를 맞이하게됩니다.

구찌의 새로운 콤비의 등장

PPR그룹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구찌의 새로운 콤비가 등장하게 됩니다.

CEO로 임명된 마크 리

프리다 지아니니 였습니다.

프리다 지아니니

구찌의 악세사리 팀에 있었던 

프리다 지아니니는 30대 초반 그 능력을 인정받아 톰 포드를 잇는 구찌의 수석디자이너로 인정받게됩니다.

좌 뉴뱀부백 우 뉴재키백

톰 포드의 천재성을 이어갈 수 있을것인가에 대한 의문점에 대한 걱정과달리

프리다는 톰포드의 빈자리를 채우고도 남았으며 

자신만의 현대적인 현대여성의 감각으로 매 시즌 경쾌하고 럭셔리한 컬렉션을 선보이며 

구찌의 매출을 40% 끌어올리는 큰성과를 보여주며

이후 2006년 [비즈니스 워크]지의 세계TOP브랜드 46위를 차지하게 하며

최고의 명성을 가져가는 성과를 이루게됩니다.

이후 패션계의 새로운 트렌드 변화로인해

2014년 12월12일에 

프리다 지아니니는 구찌의 크레이티브 디렉터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 구찌 자동차!"

1번 AMC hornet 구찌 2번3번 피아트 500 구찌 에디션

과거 알도 구찌는

AMC(American Motors Corporatin) 과 협업을 맺으며

미국 자동차 시장에 진출하였습니다.

첫번째로는 AMC hornet의 차량 내부였으며

두번째로는 캐딜락 세빌 세단차량

세번째로는 2011년 fiat와 함께 fiat500 제품으로 등장하였습니다.

이렇듯 구찌는 한곳에만 치우치지않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곳저곳에서 들려주고싶어하는 명품 브랜드였습니다.

"구찌의 뮤즈 이야기"

 

샬롯 카시라기

할리우드의 여배우, 모나코의 왕비였던 구찌의 플로라를 만들게했던

그레이스 켈리의 손녀인 샬롯 카시라기 공주는 다섯 살 때부터 40억 달러의 재산을 소유한

할아버지로부터 지중해의 섬을 생일 선물로 받았습니다.

18세 생일에는 전 세계 사교계 최고의 유명인사 450여 명이 몰려와 사흘동안 파티를 벌였고

그녀는 곧 3천만 달러의 재산을 물려받게 됩니다.

구찌의 뮤즈로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특히 구찌는 승마 데뷔와 동시에 전도 유망한 기대주로 주목받았던 카시라기 공주를 내새워

귀족들의 스포츠인 승마에서 영감을 받은 브랜드의 전통을 이어받는 마케팅적으로도 훌룡한 뮤즈를 가지게되었습니다.

"기부"

구찌는 유니세프와 2005년 부터 파트너쉽을 맺고

전세계 구찌매장에서는 유니세프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유니세프 컬렉션의 판매액의 일부를 유엔 아동 기금으로 기부하게됩니다.

5년만에 구찌는 유니세프에 7백만 달러 이상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구찌는 유니세프 넬슨 만델라 재단 , 함부르크 소사 이어티에서 2004년에 설립 한

유니세프의 아프리카 학교의 최대 기부자라고 합니다.

구찌의 목표는 HIV / AIDS 및 극심한 가난에 처한 어린이들과 고아가 된 어린이들을

특별히 강조하며 사람들을 위한 기초 교육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후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구찌의 유스시스템으로 다시 찾아오게된 전성기"

구찌가 해마다 매출이 20% 이상 줄어드는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로고 자체를 들어내어 딱 봐도 어떤 브랜드인지 강조가 되었던 상징적인 구찌백은

로고리스 말그대로 로고가 드러나지않는 열풍이 불게 되면서

로고가 크게 박힌 제품들은 과거의 역사속의 제품으로 남게되면서입니다.

그러나 그때 구찌를 구원해줄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등장합니다.

알렉산드로 미켈레

알렉산드로 미켈레는 72년생의 로마출신으로

2002년 취업난을 뚫고 구찌에 입사하여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던도중

구찌의 전 수석 디자이너인 프리다 지아니니의 악세사리 전담 디자이너로 활동을 하였습니다.

항상 다른 유명디자이너들에 비해 네임벨류가 떨어지는 디자이너였으나 

그는 수석 디자이너의 자리로 올라서게됩니다.

2014년 프리다 지아니니가 파트리지오 디 마르코 CEO와 구찌를 떠나자

알렉산드로 미켈레 또한 회사를 떠나려고 계획하고있었다고합니다.

그리고 계획을 실행에 옮겨가고 있었지만

구찌 수석디자이너는 공석이 되었고 2015년1월 구찌의 CEO로 임명된

마르코 비자리씨가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집에 커피를 마시기 위해 찾아갔다고합니다.

(회사도 안나가고 그만두려고 잠수타고있었는데 CEO가 찾아옴)

 

마르코 비자리는 구찌의 수석디자이너중 한명을 알렉산드로 미켈레로 지목하고있었습니다.

미켈레는 이것이 시험관문인 면접인줄도 모르고 구찌를 퇴사한 상태였기에 

비자리를 그냥 아는 아저씨처럼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과감없이 이야기했다고하네요

그날이후 구찌CEO는 비자리씨의 전화를 통해

"일주일 안에 패션쇼 준비가 가능하냐고 물어보았고"

미켈레는 일주일만에 구찌 남성복 컬렉션을 성공시키게 됩니다.

그렇게 남성복 컬렉션을 선보이고 이틀 후 구찌는 그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구찌 전속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하게됩니다.

 

그후 구찌는 큰도박을 한것과 같았습니다.

유명했던 수석디자이너들을 내버려두고 무명에 가까웠던 미켈레를 수석디자이너로 임명하게된건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죠

하지만

구찌는 그런 선택으로 명품브랜드 시장의돈을 모두 쓸어모으게 됩니다.

미켈레는 르네상스 시대의 장식적인 화려함과 모든것이 가능한

규칙이 없는 아이디어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히피였기에 하버지의 영향으로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는

자유 분방한 기질이 있으며

그냥 무규칙,무시대,무성을 추구하는 취향으로

구찌 컬렉션에는 여성복과 남성복을 나누지 않고있습니다.

현재의 구찌로 기억되는 인상깊은

애니멀 프린팅 및 자수를 이용해 구찌를 다시한번 일으켜세웁니다.

미켈레는 전통이있는 명품에 재미있는 포인트를 넣은것 외에도

여성의류들을 보면 굉장히 심플하고 단정한 디자인의 제품을 잘만들어내게됩니다.

힙한 구찌 래퍼들의 브랜드 구찌

구찌가 힙한 명품브랜드로 인식된건 최근입니다.

미국의 유명래퍼의 노래의 여파도 있는것같습니다.

그노래는 래퍼 릴펌의 GUCCI GANG

간단하면서도 트렌디한 랩을 하는 래퍼로

중독성있는 노래를 선사하며

콜롬비아와 미국의 국적을 가진 이래퍼는

힙합의신 에미넴에게 디스를 당했을시 영광스럽다고했던

2017년 10월 13일

GUCCI GANG 이라는 노래를 발표합니다.

 

현재 유튜브에서 8억 뷰를 달성해있는 뮤비로

구찌의옷들을 입고나오며

구찌갱 구찌갱 반복적인 가사의 랩을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구찌매장에서 마음대로 쇼핑을 할수있는만큼 돈을많이벌었다고하는 

래퍼의 생각을 가사로 쓴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외에도 국내 래퍼 비와이 "구찌뱅크"라는 노래를 발표하였습니다.

비외이의 구찌

다소 개인만의 개성을 표현이 강하지만

많은 관심을 가지게되었습니다.

이렇게 구찌오 구찌의 구찌에서부터

현재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구찌까지

구찌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다음시간은 발렌시아가의 이야기를 해보려합니다.

 

재미있고 유익하셧다면 하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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